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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가에세이

봉지 커피 하나

지저스타임즈·2024.11.28 09:56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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봉지 커피 하나

 

​

 

게으른 하늘에 봄이 찾아오더니

올망졸망한 골목길 보드블록 틈에도

이름 모를 풀꽃들이

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는 아침

 

지나온 세월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

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끌고 골목길을 돌아나오던 할머니는

 

삶의 끝자락에

묻어오는 아픔이 있어서인지

언제나 쉬어가는 편의점 한 귀퉁이에

몸을 의지하고 앉았습니다

 

​

삐거덕거리는 몸뚱어리만큼

오래된 세월을 쓰다듬고만 있는 할머니에게 편의점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반기듯 문을 열더니

 

“할머니..

꽃샘추위라 아직도 추워요

얼른 들어오세요“

 

못이기는 척 따라나선

할머니에게 간이 의자를 내밀어 주더니 이내 봉지 커피 한잔을 타서 내밉니다

 

“아이고 …

번번이 미안해서 이걸 어쩌누“

 

“할머니…

천천히 몸 녹이고 가세요”

 

봄 향기 같은 인사를 건넨 여자직원은

새벽에 배달된 물건들을 이리저리 진열하고 있었는데요

 

​

그렇게

 

오고 가는 계절처럼 할머니와 여자직원은 오래된 친구처럼

만나면 반가운 미소로 봉지 커피 하나에 실은 온기를 나누며 깊어져 가던 어느 날

 

​ 때늦은 저녁인데

문을 열고 들어서는 할머니를 보며

 

“할머니께서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?”

 

할머니의 두리번거리는 눈동자가

어느 자리에 멈추어 서는 걸 본

여자직원은

 

“할머니 미역국 드시고 싶어서

이 밤에 나오신 거구나”

 

“오늘 저 멀리서 우리 손자가

오는 날인 걸 내가 깜빡했지 뭐여“

 

“할머니… 잘됐네요

이거 내일 반품 하려 했는데

그냥 가져가세요“

 

​

낡아가는 세월에

주름 깊은 바람에 묻어 있는 아픔을

내보이고 싶지 않으셨는지

 

할머니는

흔들리지 않는 기억 하나를 매달고

바쁜 걸음으로 걸어나가시는 뒷모습을

애연하게 바라보던 여자직원은

 

얼마 뒤

주름 깊은 바람이 전해준

이야기하나를 듣고 말았는데요

 

​

 

“저 할머니..

엄마·아빠 없는 손자를 홀로 키우다

재작년에 교통사고로 그만 하늘나라로

갔다지 뭐야 아마 그날이 손자 제삿날이였나벼“

 

 

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전해준 이야기를

가슴에 매달고 있었던 그 여자직원은

말하려 해도 입 다문 하늘처럼

서계시던 할머니가 오기만을 기다리다

공무원 시험 합격통지서를 받고

그만 지방으로 발령이 나 가버리고

말았습니다

 

​

 

지나가는

바람같은 날들만 흘려보내다

일 년이란 시간 앞에 멈춰선 어느 날

 

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린 그 편의점 앞 할머니가 앉아계시던 그곳에는

비바람을 견디다 녹이 슬어 버린 주인 잃은 손수레가 벽을 향해 세워져 있었고

 

먼 데서 온 우리 손자에게

따뜻한 미역국을.먹여 보낼 수 있게 해줘서.고마웠다고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맡기고 간 봉지 커피 하나가

하늘거리는 봄바람을 견디며

쓸쓸히 놓여져 있었습니다

 

​

할머니의 온기는

그대로 남겨 놓은 채로….

 

 

​

 

펴냄/노자규의 골목 이야기

지저스타임즈 cpj5037@daum.net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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